주일 설교 요약 (2026년 2월 8일/주현 후 다섯 번째 주일)
이 땅의 소금, 이 세상의 빛 (성서정과 복음서: 마태복음 5장 13-20절)
김백희 목사
유명한 신학자이자 작가인 헨리 나우웬의 재미있는 일화 하나를 소개합니다.
나우웬이 예순을 훌쩍 넘겼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갓 대학생이 된 청년이 찾아와 자기 아버지 때문에 못 살겠다며 하소연을 하더랍니다. “선생님, 저희 아버지는 정말 전형적인 꼰대세요. 자기 생각만 정답이라고 강요하고 제 말은 애 취급하며 무시하세요. 도무지 대화가 안 됩니다.”
그 말을 듣고 나우웬이 인자하게 웃으며 위로했습니다. “원래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고집도 생기고 생각도 굳어지기 마련이란다. 일단 그 점을 이해하고 대화할 방법을 찾아보자.” 그러자 학생이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러게요, 선생님. 저희 아버지도 벌써 마흔 살이나 되셨는걸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나우웬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 이 청년 눈에는 마흔만 되어도 고집불통 노인인데, 예순이 넘은 나는 대체 어떤 존재로 보일까?” 그제야 비로소 자신이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쳐지고 있는지 정확히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나만 몰랐는데 내가 지금 이런 사람이구나”, “내가 이런 모습으로 보였겠구나”라고 깨닫는 낯선 순간들 말입니다. 이런 깨달음이 때론 서글프기도 하지만,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아는 것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나를 제대로 알아야 내 장단점을 돌아볼 수 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소개할 성서의 메시지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그 정체성에 대해 아주 특별한 비유를 들려줍니다. 바로 우리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것입니다.
이 선언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앞으로 소금 같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라” 혹은 “빛이 되기 위해 애써라”라는 숙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대신 “당신은 이미 소금이고 빛이다”라고 존재 자체를 인정해 줍니다. 우리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발버둥 칠 필요가 없습니다. 삶의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우리는 이미 세상에 맛을 더하는 소금이고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살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셈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이미 충분히 가치 있고 꼭 필요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둘째, 소금과 빛에는 그 역할이 필요한 장소가 있습니다. 성서는 그냥 소금, 그냥 빛이라 하지 않고 이 땅의 (of the earth) 소금, 이 세상의 (of the world) 빛이라고 말합니다. 신앙이나 신념은 방 안에서 혼자 간직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금은 음식 속에 들어가 맛을 내야 하고, 빛은 어두운 곳을 비출 때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 또한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구체적인 일상 한복판에서 그 가치를 증명해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일상 속에서 소금과 빛으로 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요? 예수께서는 이를 착한 행실이라는 아주 명쾌한 단어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착하다는 것은 그저 순하기만 한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바탕으로 선하고 아름답게, 또 지혜롭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뜻합니다. 어려운 이론보다는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배려가 곧 착한 행실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가끔 옳은 일을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댈 때가 있습니다. “내가 옳다”는 확신이 자칫 타인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죠.
하지만 솔직하게 자신을 돌아보면 어떤가요? 우리는 누군가를 완벽하게 밝혀줄 만큼 밝은 존재도 아니고, 늘 적당한 맛을 내는 소금도 아닙니다. 세상에 나가 녹아지기는커녕 내 고집만 세울 때가 더 많고, 내 안의 작은 어둠 하나 몰아내지 못해 쩔쩔매는 것이 우리 인간의 솔직한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소중한 존재인 이유는, 우리를 향한 절대적인 긍휼과 사랑이 먼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완벽해서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고 실수 많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품어주시는 그 너른 품이 있기에 우리도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소중히 여길 수 있는 힘은 내 대단한 인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격 없는 나를 먼저 소중하다 불러주신 그 따뜻한 시선을 경험했기에, 비로소 타인을 향해서도 너그러운 마음을 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원칙과 배려 사이의 균형은 억지로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받은 그 넉넉한 이해와 사랑을 깊이 깨달을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결과물입니다.
나를 아껴준 그 따스함이 우리를 통해 세상으로 흘러갈 때, 우리의 친절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살맛을 주고, 우리의 작은 양보가 누군가의 우울한 마음에 환한 빛이 될 것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맛을 내는 사람과 빛을 나누는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그 부름 앞에 서 있는 주인공은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은 세상에 맛을 더하는 소금입니다. 당신은 세상을 밝히는 빛입니다.”





